Economy
주식 시장의 시작과 폭락의 역사
정보 매니아
2020. 7. 28. 17:00
주식 시장의 시작과 폭락의 역사
요즘 출퇴근길에 지하철이나 버스를 기다릴 때 주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주식 시장에서 수익을 많이 보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면서 대중들의 관심이 상당히 많이 쏠려 있는데요. 정작 주식을 공부하면서 매매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오늘은 주식의 역사에 대해서 기본적인 부분을 알아보겠습니다. 주식은 수익도 중요하지만 손실을 보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한데요. 이러한 손실을 분산하고 좀 더 안정적인 익을 내기 위해 주식이라는 개념이 역사에서 처음 등장합니다. 유럽에서 한창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전세계로 사람들이 뻗어 나가기 시작하자 바다를 건널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선박에 대한 수요가 폭등합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 만든 선박들은 건조 비용이 많이 들었는데요.심지어 먼 바다를 나가야 하기 때문에 배가 난파당하거나 파도에 휩쓸려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위험 부담 즉 리스크를 분산시키기 위해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가 1600년 12월 31일에 세워집니다. 이 회사는 네덜란드 상인들에 의해 세워졌는데요. 당시 유럽은 향신료 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후추, 육두구, 메이스, 사프란 등 인도에서 주로 생산되는 향신료에 열광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나 워낙 소량만 유통이 되어 소량의 후추를 구매하기 위해 한 나라에 재정이 흔들렸을 정도라고 합니다. 게다가 당시 유럽인들에게 인도는 신비한 미지의 세계라는 환상을 가지게 만드는 나라였는데요. 이러한 복합적인 요소가 더해져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가 설립됩니다. 1602년 네덜란드에는 6개의 동인도 회사가 있었는데요. 이 회사들이 1개의 회사로 합병되고 이 회사의 지분들 가지고 있는 17명은 6000 길드 지불하고 회사의 중역에 오르게 됩니다.
4년 후에 이 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동인도회사가 미래에 가져가 줄 주익을 가져갈 수 있는 권리를 주는데요. 이것이 우리가 현재 주식이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 3년 후인 1609년에 17명이 가지고 있는 주식은 환불은 불가 하지만 개인간의 거래는 인정하게 되는데요. 이것이 바로 인류 최초의 주식시장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식시장이 생기면서 동인도 회사(East India Company)는 엄청난 투자자들을 유치하고 인도에서 가지고 오는 직물과 향신료를 독점하게 되는데요. 당시의 시가총액을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아직까지도 인류가 만든 회사들 중 가장 큰 규모의 회사라고 합니다.
주시시장은 이후 유럽에서 특히나 빠르게 성장합니다. 이런 급격한 성장에 거품이 끼게 되고 폭락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인 1719년에 발생한 존 로(John Law)의 사건입니다. 주식의 역사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인데요. 이 사람은 영국에서 1671년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금세공 업자였는데요. 존 로(John Law)는 23살이던 1694년 한 여자를 두고 결투를 벌이다가 상대를 죽여 사형을 선고받게 됩니다.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던 그는 감옥에서 탈출해서 영국에서 네덜란드로 도망을 가게 되는데요. 이 사건이 존 로(John Law)의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됩니다. 당시 네덜란드는 대항해시대와 동인도회사를 세우며 세계 금융의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수도인 암스테르담은 1690년에 최초로 중앙 은행을 건설하기도 했는데요. 중앙 은행을 세운 이유는 스페인과 네덜란드가 전쟁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돈이 급하게 필요했던 네덜란드는 사람들에게 국영 복권을 판매했고 또한 화폐위조가 만연했기 때문에 위조 화폐로부터 상인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존 로(John Law)는 당시 암스테르담에 도착해 이 상황을 모두 알게 되었는데요. 특히나 그는 동인도회사와 주식시장을 알게 되고 나서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 갈 곳 없이 도박판을 전전하던 존 로(John Law)는 회사와 주식시장과의 관계에서 어떤 결함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 결함은 바로 중앙 은행이 너무 소극적으로 운영된다는 점 그리고 상인들만 은행을 이용하고 일반 시민은 은행권을 쓰지 못 한다는 점 마지막으로 주식 발행을 제한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러한 결함을 본 존 로(John Law)는 금융 제도를 개혁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세운 이론이 현실에서 얼마나 작용할 지 알고 싶었던 존 로는 프랑스로 향하게 되는데요. 그 이유는 당시 프랑스는 루이 14세의 무리한 전쟁으로 인해 국가 재정이 파탄 났기 때문입니다. 국가 부도를 3번이나 맞은 프랑스를 자신의 이론을 적용시켜 경제를 일으켜 세운다면 순식간에 떠오를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한 것인데요. 마침 프랑스 또한 개혁이 필요한 상황이라 존 로를 받아들입니다. 존 로는 프랑스에 네덜란드에서 보고 배운 은행을 설립해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데요. 우선 은행을 설립하고 지폐를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은행으로 투자금이 들어오게 되는데요. 이 때 프랑스 정부가 가지고 있던 부채를 은행의 주식으로 전환해 투자자에게 주식을 발행해 주었습니다. 이 투자금으로 프랑스는 교역을 확대해 재정 적자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프랑스의 투자금과 부채를 중앙은행을 통해 통합관리에 들어간 것인데요.
이 때 루이 15세를 대신해 섭정을 하고 있던 오를레앙 공에게는 프랑스를 다시 한 번 부유하게 만들자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사실 존 로(John Law)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은 동인도 회사 같은 독점 무역권을 가지는 회사를 설립하는 것이었습니다. 프랑스의 모든 국민이 주주가 되고 그 위에 자신이 오르는 것인데요. 이 계획은 결국 성공하게 됩니다. 당시 유럽은 식민지를 확장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는데 존 로가 주목했던 곳은 신대륙 즉 미국의 루이지애나의 거대한 땅이었습니다. 이 곳에 대한 무역권을 따낸 존 로는 지속적으로 통화팽창정책으로 1716년 드디어 프랑스를 재정위기에서 벗어나게 만들게 됩니다. 프랑스의 경제 성장으로 국민들은 무리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는데요. 그러나 프랑스 정부는 존 로의 미시시피 회사를 전혀 제제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미시시피 회사가 커질수록 세금을 더욱 확보할 수 있었으며 정부 부채 또한 상환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점점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은 심각한 거품이 끼기 시작했는데요. 액면가에 20배에 달하는 10,000 리부르에 달하기 시작했습니다. 1720년 존 로는 프랑스에서 가장 큰 부자가 되었으며 재무부장관에까지 올라가 부와 명예 모든 것을 얻었는데요. 문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미시시피 회사가 가지고 있는 루이지애나의 독점권에 대한 불신이 대중들에게 퍼지기 시작합니다. 당시 존 로가 가지고 있던 루이지애나는 회사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 줄 곳으로 선전이 되었습니다. 투자자들은 당연히 동인도 회사가 인도를 통해 막대한 부를 창출한 것처럼 수익을 안겨줄 것으로 생각했는데요. 그러나 막상 루이지애나를 다녀온 사람들로부터 루이지애나는 아무런 쓸모 없는 늪지대의 정글이라는 소식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이미 액면가의 20배에 달했던 주식은 폭락을 시작했고 순식간에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는데요. 시민들은 은행에 몰려와 폭동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결국 존 로는 프랑스에서 쫓겨나 다시 도박을 하며 전전하다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프랑스는 이 사건 이후로 다시 한 번 재정위기를 맞게 되고 루이 16세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를 재정 적자에서 구출하기 위해 애쓰지만 결국 실패하게 되는데요. 이를 계기로 프랑스 혁명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